이정은 자(字)가 공간(公幹), 호(號)가 나옹(懶翁), 나와(懶窩), 본관은 전주(全州)로 그의 조부인 이상좌(李上佐, 1465-?), 부친인 이숭효(李崇孝), 숙부 이흥효(李興孝, 1537-1593)가 모두 화원 출신으로 조선 초기부터 화업을 이어왔던 대표적인 화원 집안 출신의 화가이다. 그는 직업 화가였으나 간역당 최립(簡易堂 崔笠)에게서 시문을 배우기도 하였으며 허균(許筠) 등 당대 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전한다. 허균은 “이정의 산수화는 그 기법이 안견으로부터 나왔으나 더욱 노련하고 인물화는 그의 조부에게서 전수 받았으나 광채는 더 생동하다.”라고 평하였는데, 실제로 이정은 조선 초기 산수화의 대표적 화풍인 안견파의 전통을 잇는 한편, 절파화풍(浙派畫風)과 남종화풍(南宗畫風)까지 소화하였던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이정의 이 〈산수도〉 6폭은 선비들이 산수와 어우러져 대자연을 완상하는 여러 장면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화면의 좌반부에 무게 중심이 있는 3폭과 우반부에 무게 중심이 있는 3폭으로 구성된 일종의 편파구도의 작품이다. 그런데 첫 번째 두 폭은 계절 상 봄으로, 두 번째 두 폭은 여름으로 볼 수 있는데 반해 마지막 두 폭은 각기 가을과 겨울장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여 원래는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처럼 여덟 폭으로 구성되었던 것에서 두 폭이 산락(散落)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 산수도 중 네 번째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징(李澄)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소상야우도(瀟湘夜雨圖)〉와 연무가 가득한 운산의 표현이나 화면의 구성, 경물 배치 등이 매우 유사하여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전경의 토파(土坡)를 더 확대하여 화면 오른쪽에 엎드려 한가로이 쉬고 있는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소를 그려 넣었는데 이 산수도 중 유일하게 인물이 없는 폭으로서 주목되기도 한다. 한편 이 작품에서 두 폭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한 척의 배와 그 안에 기대어 앉은 선비의 모습이 거의 동일한 형태로서 반복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정의 이 〈산수도〉 여섯 폭은 모두 수면과 안개로서 넓은 공간감을 시사하고 있으며 구도나 수지법, 단선점준을 적극 구사한 산 표면 등에서는 안견파 화풍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섯 째 폭에서는 소경(小景) 산수인물화를 그리고 있어 가전화풍(家傳畵風)과 함께 당시에 유행하던 이경윤 등의 조선 중기 화풍을 잘 소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