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웨이웨이는 회화, 사진, 영화, 설치, 건축, 공공미술, 전시기획, 출판 등 분야를 망라하고 전방위로 활동하는 현대미술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혁명 때 추방당한 그의 부모와 함께 중국 서부지역에서 성장했다. 문화혁명 종식 후인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중국 최초의 전위예술단체에 참여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 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부에 차오창디 예술촌을 형성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프로젝트에도 함께했다. 2015년 이전까지 중국에 거주하며 적극적으로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2015년 독일로 이주한 뒤 유럽에 체재하면서, 주로 <난민>, <인권>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웨이웨이는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통하는 선구적 예술가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현재 포르투갈에 체류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크리스털 큐브(Crystal Cube)>는 1m 정육면체 혹은 1m를 벗어난 비정형의 8개의 유리 큐브 작품이다. 중국의 전통예술과 재료에 대한 본인의 이해, 형태와 부피에 관한 건축/조각적 관심을 결합한 <큐브> 시리즈와 궤를 같이한다. 큐빅미터는 세계시장에서 동일하게 통용되는 단위 이지만, 웨이웨이는 같은 크기의 큐브에 중국만의 정체성과 자전적 요소를 담는다. 예컨대 흑단, 찻잎, 크리스털로 만든 1m 큐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 비율을 참조한 토니 스미스의 강철 큐브 작품 <주사위(Die, 1962)>에서 시작된 전통에 속한다. 하지만 웨이웨이에게 재료의 본질은 형태만큼이나 중요하다. 스토리가 배제된 미니멀리즘의 무미건조한 입방체와 대조적으로 흑단 큐브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청나라 시대의 작은 상자, 1톤의 보이차 큐브는 차를 블록형태로 숙성시키는 중국 전통과 관계된다. 크리스털 큐브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공정과 재료의 특성을 살린 결과물이다. 중국의 가장 큰 크리스털 기업에서도 (작은 유리 공산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으므로) 이 거대한 큐브 덩어리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모험적이고 불가능했다. 수년간의 거듭된 실패를 거쳐 유리 본연의 힘과 표면 요철을 가진 웨이웨이만의 큐브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