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는 자(字)가 한수(漢叟), 호(號)가 자하(紫霞)로 본관이 평산(平山)이다. 그는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조선 말기의 대표적 문인화가이자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이었다. 그는 벼슬길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지만 비교적 순탄한 문인의 생애를 살았으며, 평생을 시서화로 자오(自娛)하며 지냈음이 지금도 상당수 전하는 그의 유묵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림 중에서도 특히 묵죽(墨竹)에 가장 능했으며,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였다. 18세기와 19세기의 과도기에 활동하였으며 강세황의 제자이자 김정희의 선배이기도 했다.
1812년 44세 때에는 서장관으로 연행(燕行)하여 청(淸)의 석학(碩學) 옹방강(翁方綱)을 만나 이후 그의 아들 옹수곤을 비롯한 중국인들과 교유하기도 했다. 신위의 작품 중 산수는 중국의 여러 대가(大家)를 방(倣)한 소품이 몇 점 전한다. 그가 작품에서 언급한 인물들은 미비(米芾), 황공망(黃公望), 동기창(董其昌)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산수도 대련은 각기 청대(淸代)의 왕감(王鑑)과 운수평(運壽平)을 본받았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화풍상으로 직접 두 사람과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은 조선 후기, 말기의 다른 방작(倣作)과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이 그림은 습윤하고 부드러운 필묵법이 화풍상 두드러진 특징인데, 이 점은 그의 묵죽도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또 화면이 번잡하지 않고 비교적 간소한 것도 그의 특징이다. 신위의 산수화로서는 이 대련과 같은 대폭(大幅)은 극히 드물다. 또 필치와 구도, 묵법 등에서 안정되고 격조가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산수화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