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에는 “배와 김상숙(坯窩 金相肅)(1717- 1792)이 글에서 말하길 송계(松溪)는 나의 외숙이다. 사람 된 모습이 기이하고 예스럽다. 앉은뱅이가 되어 한 가지에 몰두한 끝에 홀로 그림에 통달하였다. 유습(幼習)에서 벗어나 묘경(妙境)을 터득한 것은 스승이 있어서가 아니다. 배와금공문일 송계여표숙 위인상모기고 이치독지통어 자유습이해기묘비유사언(坏窩金公文日 松溪余表叔 爲人狀貌奇古 而癡獨智通於 自幼習而解其妙非有師焉)”라는 내용의 글과 “이 그림은 정제(精齊)하며 매우 법도가 있다. 차화정제극유규구(此畵精齊極有規矩)”라고 쓴 19세기 헌종 때의 문신인 이안재(易安齋), 이도재(李道在)의 찬시가 있다. 초서에 능했던 김상숙은 죽천 김진규(竹泉 金鎭圭)의 종손이며 우의정 김상복(金相福)의 아우이다.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 송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18세기 후반에 남종화풍을 주로 구사한 일명화가(逸名畵家)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맞은편 언덕을 향해 다리를 건너가는 선비와 동자가 있는 물가 풍경을 예찬식(倪瓚式)으로 구성한 이런 구도의 그림은 <고씨서보(顧氏書譜)>나 <개자원서보(芥子園書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근경의 언덕이 뒤로 후퇴하며 중경까지 닿아 있고, 간단한 중경과 우뚝한 주산(主山) 사이에 넓은 안개를 집어넣어 평면적인 화면 감각을 어느정도 극복하였다. 농담에 차이를 두어 선후 관계를 표시한 소나무의 꼼꼼한 묘사나 주산을 처리한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성실한 묘사를 하였다. 근경에 배치된 한 쌍의 소나무는 18세기 남종화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경물(景物)이어서 주목된다. 이는 조선 전기 안견파(安堅派) 산수의 근경에 자주 등장했던 소재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