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겸은 당시 대표적인 노론 반열층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김창업의 서출 자손이었기 때문에 높은 관직에 나갈 수 없었다. 대신 서화에 밝았던 부친의 뒤를 이어 서화로 자오하며 평생을 지냈다. 그는 특히 전국 각지를 답사하며 진경산수화를 그리는데 심취하였던 듯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는 한때 정선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정선과 화가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진경을 그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의 화풍은 매우 개성적이다. 특히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청나라 한족 문인들에 의해 추구된 안휘파 산수양식을 토대로 산의 중량감을 약화시킨 기하학적인 형태, 맑고 고운 담채를 담묵과 함께 선염하여 준법을 대신한 뒤 산의 질감과 형세를 표현한점 등 진경산수화풍의 새로운 면모를 개척한 화가이다.
이 그림은 기암절벽으로 둘러 쌓인 깊은 산 중, 길을 가던 선비가 시냇가에 앉아 물을 바라다 보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근경을 크게 부각시켜 화면에 꽉 차게 담았고, 큰 규모의 기암절벽과 함께 좌우로 갈라진 가지를 가진 두 그루의 소나무가 크게 그려졌는데, 분명 실경을 그린 듯하지만 특정한 장소로 확인되지 않는다. 바위 덩어리들은 그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윤곽을 잡은 뒤 군청을 섞은 담묵으로 선염하여 중량감을 표현하였으므로 그 이전의 대가인 정선의 산수표현과 크게 차이가 난다. “진재(眞宰)”라고 관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