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1710-1760)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선비화가로 본관은 전주, 자는 원령(元靈), 호는 릉호관(凌壺觀) 또는 보산자(寶山子)이다. 고조부가 영의정을 지낸 노론(老論)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증조부가 서자(庶子)였기 때문에 신분적인 제약을 받아 문과(文科)에 응시할 수 없었다. 음보(陰補)로 출사하여 1750년에는 음죽현감이 되었다. 1752년 현감을 사퇴한 뒤에는 은거하며 예술로 소일하였다. 시서화삼절(詩書畫三絶)로 유명하였으며 그림 이외에도 전서와 전각을 잘하였다. 그의 화풍은 깔끔하고 예리한 필묘와 맑고 가벼운 묵법, 투명한 느낌을 주는 담채, 담박한 아치(雅致)를 강조한 구성과 소재로 조선 후기 중 가장 고아(高雅)한 화풍을 구사한 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문집으로 <능호집(凌壺集)> 두 권이 전한다.
우뚝 솟은 절벽 아래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흘러가는 강물과 그 건너편 무성한 숲을 담은 이 그림은 화면을 꽉 채운 구성에도 불구하고 담박하고 깔끔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 예리하면서도 가볍고, 율동적인 필묘와 맑고 투명한 묵법, 섬세하고 활기찬 수파묘, 다채로운 나뭇잎 표현에서 여기적(餘技的)인 문인화가의 세련된 경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경치 중에 한 사람의 인적도 표현하지 않은 것도 은둔자가 애호하는 한아한 자연경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와 기법의 산수화는 이인상이 중년 이후 은둔하던 시기에 많이 그려졌다.
이 작품에는 “고강은영뢰로투 고목창등일월개(高江隱映雷露鬪 古木蒼藤日月皆)”이라 제시하였고 “원령(元靈)”이라 관서 하였으며, 판독이 안되는 주문방인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