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헌은 19세기의 문인화가로 자(字)가 영로(英老), 호(號)가 연운(硏雲)이며 본관은 기산(磯山)으로 벼슬은 승지에 올랐다. 그는 대나무를 잘 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에서도 정원 곳곳을 대나무로 채우고 있어 그의 대나무 그림의 화풍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줄기는 담묵으로, 잎은 농묵으로 처리한 점이나 댓잎이 가늘고 길고 부드럽게 늘어진 모습이 자하 산위(紫霞 申緯)의 대나무 그림을 연상케 하는데 신위는 그의 <경수당집(警修堂集)>에서 “소산 송공(蘇山 宋公) - 송상래(宋祥來)의 아들 연운(硏雲)이 풍기가 날로 향상되었다.”라고 언급하면서 송주헌 시의 운자를 빌어 적는다고 하였는데, 이 기록으로 미루어 두 사람 사이의 교유 뿐 아니라 화풍상의 영향 관계도 추측케 한다.
이 그림은 ‘영벽원(靈壁園)’이라는 정원을 그린 그림으로 지면을 전부 수묵으로 칠한 점등에서 서양화풍의 영향이 간취되는 점이나 정원을 부감법으로 조망한 구성 등이 강세황의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신위가 강세황의 제자였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 그림은 강세황에서 송주헌으로 이어지는 문인화풍의 한 맥을 잇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죽림으로 둘러싸인 여러 채의 기와 지붕들로 보아 이 저택의 규모가 상당함을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선비들의 거처인 사랑채와 그 마당만을 중심 주제로 포착하고 있다. 정원에는 소나무 아래로 괴석과 석상이 있고 상 위에는 화분 등이 놓여있는 전형적인 문인적 소재들로 꾸며져 있다. 멀리 원경으로는 연무 속으로 누각 등의 건물 지붕이 보인다. 이 그림은 가운데 접혀 있던 흔적으로 보아 화첩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측에 <영벽원도(靈壁園圖)>라는 화제와 그 아래로 “연운(硏雲)”이라는 주문방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