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1853년 결성된 직하시사(稷下詩社)와 1847년 이후 20여 년간이나 계속된 벽오당시사(碧梧堂詩社)에서 유최진(柳最鎭), 조희룡(趙熙龍), 류재소(劉在昭), 류숙(劉淑), 라기(羅岐)와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여항문인(閭巷文人)들의 공동 시문집인 <풍요삼선(風謠三選)>에는 그의 시가 실려 있다. 전기는 ‘동국유생(東國儒生)’ 이라는 인장을 쓴 것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수한 문인화적인 회화이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영향의 근원은 김정희(金正喜)에 닿아 있었다. 전기의 그림에는 갈필과 피마준을 간일한 구도와 결합한 감필체의 산수화와 꼼꼼한 필치를 견실한 구도와 결합한 <매화서옥도>류가 있다.
이 그림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낙엽수와 세 그루의 상록수, 키 작은 관목, 그 뒤의 토산으로 이루어진 단아한 구도로서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관지는 이 그림이 기유년(己酉年), 즉 1849년 겨울 밤 독필(禿筆)을 시도하여 그린 작품임을 말해 준다(“추산잡수 기유동야 시독호 秋山雜樹 己酉冬夜 試禿豪”). 그의 기년작의 대부분은 1849년에 집중되어 있어 이즈음이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라고 여겨진다. 어딘가 경직되고 자유롭지 못한 필치는 독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몽당붓의 둔탁하고 거친 맛을 마른 먹과 조화시켜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잘 나타내었다. 성글 게 죽죽 그어내린 피마준의 조방한 맛과 툭툭 찍힌 세 로점은 전기 산수화의 한 특징이다. 그의 자유롭고 개성있는 독필의 묘미는 같은 해에 그린 <계산포무도(溪山泡茂圖)>에서 절정에 이른 모습인데, 이 <추산잡수도>는 한결 정돈된 필치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문방인 “고람(古藍)” 외에도 “이초당··(二草堂··)”, “기유소작己(酉所作)”, “류조원인(劉照遠印)”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