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환은 자가 영수(永受), 호는 복헌(復軒) 혹은 담졸당(擔拙堂)이다. 상의원 별제(尙衣院 別提)와 소촌찰방(召村察訪)을 지냈다. 김응환 은 18세기 중엽부터 20세기초까지 16명의 화원(畵員)을 낳은 개성 김씨 출신으로, 개성 김씨가 조선후기부터 말기까지 중요한 화원집안으로 맥을 이어나가는데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응환의 동생인 응리(應履)를 비롯하여 아들 세대의 득신(得臣) . 석신(碩臣) · 양신(良臣), 다음 세대의 건종(建鍾) · 화종(和鍾) 등이 모두 개성 김씨였으며 이들은 인동장씨(仁同張氏)와 개성이씨(開城李氏) 등 다른 굵직한 화원 집안과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인맥 형성이 화원 세계에서는 주요 회사의 등용과 승직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고 서습(書習)을 전승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고려할 때 김응환의 가계는 18세기 후반 이후 화원 가문과 화풍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김응환은 화보풍(畵譜風)의 남종화, 미법산수(米法山水) 계통의 발목법(潑墨法)을 위주로 한 산수화, 필법보다는 묵법과 담채(淡彩)가 돋보이는 진경산수(眞景山水) 등을 남겼다.
이 그림은 한 명의 선비가 동자를 데리고 강변의 초당으로 가는 가을 풍경을 주제로 한 것이다. 구도는 세 그루의 나무와 예찬식(倪瓚式)의 절대준(折帶皴)으로 그려진 바위, 원만한 실루엣으로 단순하게 남겨둔 원산과 그 기슭의 마을, 그리고 이 둘을 구분 짓는 수면으로 구성된 예찬식 구도의 변형을 보여준다. 잎이 떨어진 나무와 상록수가 어우러진 화보풍의 수목군, 넓직한 암반, 대숲에 에워싸인 텅 빈 모정, 다리를 건너가는 인물, 호초점(胡椒點)으로 변화를 준 바위와 언덕 등 남종화의 전형적인 소재와 기법을 사용하였다. 여기에 푸른색 담채의 맑은 처리와 준(皴)이 가해지지 않은 투명한 산은 쌀쌀한 가을날의 정취와 썩 잘 어울린다. 이 그림은 김응환이 개성적인 화풍을 형성하기 전 남종화 양식을 공부하던 시기의 초기 작품으로 판단된다.
화면 상단에 “술이 깨자 막대 짚고 마을 나서니 좁은 모래톱은 연이어 이어지고 물은 푸르네. 누가 남종(南宗)의 비결을 물었는가. 몇 개의 가지만 남은 가을 나무와 한 채의 초당(촌변장책주초성 사취면면야수청 수문남종전묘결 수가추수일모정 村邊杖策酒初醒 沙嘴綿野水青 誰問南宗傳妙訣 數柯秋樹一茅亭)”이라는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1750 ~?) 제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