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관수도란 주제는 문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고사인물도의 주제 중 하나였다. 속세를 떠나 은둔하며 자연과의 동화를 추구하는 처사적(處士的)인 삶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항상 추구하던 이상의 하나였고, 혹시 관직에 몸을 담고 있더라도 자연에의 회귀를 꿈꾸는 성시산림(盛市山林)이란 개념이 보편적인 정서였다. 따라서 이처럼 고사관수도, 관폭도와 같은 주제가 꾸준히 애호 되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편안히 앉아 흐르는 시냇물을 고즈넉이 바라보는 고사(高士)를 표현하였다. 절벽과 나무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아래에 인물을 포치하는 구성과 절벽에서 나서 직각으로 꺾인 채 위로 솟아오른 나무는 조선 중기에 유행한 절파화풍의 소경산수인물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념으로 조영석 화풍의 전통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간결하고 부드러운 윤곽선으로 형태를 규정하고 그 안에 부드러운 담묵으로 선염하여 질감을 표현하며 활엽수로 묘사된 나뭇잎을 윤택한 먹색의 느슨한 점으로 표현한 것은 화보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윤두서도 흔히 사용한 묘법인데, 당시로서는 새로운 화법이었다. 이 그림은 관념산수화와 고사인물화, 풍속화에 전념하며 조선 후기 문인화의 새로운 차원을 추구한 조영석과 윤두서가 그림의 주제나 소재 뿐 아니라 구체적인 화법에서도 친연성(親緣性)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의미가 깊다. ‘관아재(觀我齋)’라고 관서 하였고 ‘관아재(觀我齋)’란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