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운홍의 자는 치홍(治弘), 호는 시산(詩山), 한양인(漢陽人)이다.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고 생애에 관해서도 거의 알려진 사실이 없으나,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이었으며 도감의궤(都監儀軌)에는 이름이 많이 올라있어서 화원으로서 국가 회사(繪事)에 충실히 봉직 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1819년 문조신정후가례도감(文祖神貞后嘉禮都監)에 참여한 이래 1846년 문조왕릉(文祖緩陵)을 조성하는 일까지 적어도 아홉 번 도감에 차출되는 동안 정3품 통정(通政)의 품계에 이르렀으며 관직은 첨사(僉使)를 제수 받았다. 유운홍은 많은 19세기의 화원들이 그랬듯이 산수와 인물에서 김홍도(金弘道)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윤복(申潤福)풍의 여색을 강조한 풍속화를 계승한 작품도 남기고 있다.
이 그림은 ‘유제조어(柳堤釣魚)’라는 유운홍 자신의 자제(自題)가 시사하듯이 가지가 넓게 퍼진 버드나무가 있는 제방에 앉아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두 소년을 주제로 하였다. 한편으로는 낚시하는 소년들보다 노랗게 물든 버드나무에 비중을 두어 가을의 정취를 나타내는 데 주력한 듯하다. 단순한 구도와 소박한 필치의 이 그림에서는 김홍도의 화풍을 그다지 느낄 수 없다. 옹이가 많이 생기고 연륜이 있어 보이는 버드나무 둥치와 작은 점묘(點描)로 표현된 무성한 버들잎 지면의 굴곡과 질감을 나타낸 부드러운 효과, 가는 필선으로 얌전하게 묘사된 인물 등 전체적으로 필묘가 꼼꼼하며 차분하게 다듬어져 있다. 버드나무의 점묘와 지면에 한 방향으로 겹쳐 찍은 녹색과 검은색의 길쭉한 점들은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에 소장된 유운홍의 〈청산고주도(靑山孤舟圖)〉와 매우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