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현의 자는 도숙(道叔), 호는 기곡(箕谷)이며 평양에 살았다고 한다. 유복렬(柳復烈)의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畫大觀)>에 의하면 이 그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수장가이자 감식가였던 김광국(金光國)의 <석농서원(石農書苑)>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원래는 다른 그림들처럼 김광국의 식(識)가 붙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림만 전한다.
이 그림은 화면 중앙에 포치된 노송(老松)에 기대어 허리띠를 매고 있는 술 취한 노인을 그린 것이다. 술에 취한 선비나 이태백(李太白)을 소재로 한 그림은 조선시대 후기 이후에 종종 그려졌으나 이렇게 나무에 기댄 모습으로 그려진 단독의 인물상은 예가 없다. 오명현은 개인소장의 <점괘도(占卦圖)>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부옹도(負甕圖)>처럼 풍속적인 내용의 인물화를 주로 남겼으며 모두 가작(佳作)에 속한다.
찌그러지고 훼손된 갓과 풀어헤친 도포 차림의 노인은 음을 가누기 어려운 듯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나무에 몸 전체를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얼굴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도, 걱정도 없는 느긋한 표정이 살아 있다. 죽장(竹杖)을 들고 있는 이 노인은 의관을 갖추고 태사혜(太史鞋)를 신은 모습에서 양반임이 분명한데, 오명현은 술 취한 양반의 흐트러진 모습을 통해 양반들의 이면을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인의 얼굴에는 가는 필선으로 이목구비와 주름, 터럭 하나까지 정세하게 묘사하고 굴곡에 따라 음영을 가하여 사실적이고 개성적인 풍모가 전달된다. 옷주름은 다른 부분에 비해 유연 하고 단조로운 선조(線條)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점괘도>에 그려진 노승의 풍성한 의습선과 상통한다. 갈필과 담묵으로 울퉁불퉁한 소나무의 거친 표면을 효과적으로 나타냈으며 솔잎은 가늘고 명료한 필선으로 하나하나 표현하여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은 오명현이 산수와 인물 모두 상당한 기량에 도달해 있었음을 입증하는 수작이다. “오명현인(吳命顯印)”이라는 백문방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