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장은 진주인(晋州人)으로 자(字)를 자구(子久), 자고(子固), 호(號)를 수운(峀雲)이라 하였으며 야당 류혁연(野塘 柳赫然)의 증손으로 벼슬은 첨지중추부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그의 6대조인 조선 전기의 문신 죽당 류진동(竹堂 柳辰仝, 1497-1561) 역시 대나무 그림에 뛰어났다고 하니 유덕장이 묵죽에 특징이 있었던 것은 집안 내력인 듯하다. 유덕장은 이정(李霆) 이후 묵죽의 제일인자로 손꼽혔으며 조선 후기의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 화가로 간주하는 화가이다.
이 설죽도는 화면 전체를 담묵으로 칠하고 눈이 내린 부분은 하얗게 남겨 두어 대나무 위에 눈이 쌓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화면의 좌측 하단부에서 시작하여 곡선을 그리며 줄기를 꺾은 대나무의 모습은 이정(李霆)의 설죽도 등에서 영향을 받은 구성으로 생각되어 이정의 화맥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덕장의 묵죽은 이정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딱딱하게 표현된 대나무의 줄기, 비교적 통통하며 위쪽을 넓게 하여 힘있게 그린 댓잎의 형태 등에서 그만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는 화면 우측에 그의 다른 묵죽도에서 보이는 “수운거사(峀雲居士)”라는 백문방인이 찍혀 있으나 도인의 어색한 위치나 지나치게 뻣뻣한 묵죽의 모습에서 좀 더 검토를 요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