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대표하는 화원 이한철은 초상, 산수, 인물 외에도 동물, 화조, 어해, 사군자 등 거의 모든 화목에 작품을 남겨 직업화가로서의 직분을 실감케 한다. 이한철은 이 그림 외에도 크고 작은 어해도를 여럿 남기고 있다. 18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어해도는 문인 화가들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정도였으나 그 이후에는 장한종(張漢宗), 장준량(張駿良) 부자, 조정규(趙廷奎), 조석진(趙錫晉)같이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원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어해도가 전(前) 시대에 비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1815년 간행한 <자산어보(茲山魚譜)>가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어해도 대련은 각각 네 마리의 게와 갈대꽃, 세 마리의 쏘가리와 복숭아꽃 나무를 소재로 삼았다. 보통 쏘가리(魚)는 궁궐의 궐(闕)과 동일음으로서 관직생활 혹은 벼슬을 상징하는데 복숭아꽃과 함께 그려질 경우는 “도화류수궐어비(桃花流水鱖魚肥)”라는 중국의 시인 장지화(張志和)의 <어부가(漁夫歌)> 한 구절을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그림에도 장지화의 시의를 따라 “춘류무양도화수 발발유린일척비(春流無恙桃花水 潑潑游鱗一尺肥)”라는 화제가 쓰여 있으며,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 꽃이나 아무 걱정없이 한가로운 쏘가리의 모습에서 “복숭아꽃이 둘 위로 흘러갈 때 쏘가리가 살찐다.”라는 시상(詩想)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게는 딱딱한 등껍질이 갑(甲)과 같다는 의미에서 장원급제를 뜻하며 대개 전려(傳臚)의 뜻이 있는 갈대와 함께 그려 뜻을 강조한다. “피갑지극호칭곽색 被甲持戟號稱郭索.(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있어 ‘발이 많은 놈’ 이라 불린다)”라는 화제는 게의 특징적인 형태를 회화해서 설명하고 있다. 두 그림은 과거에 급제 하여 높은 벼슬을 얻기를 희망하는 길상의 염원을 담아 그린 것이지만 화제는 오히려 역설적인 내용을 취하였다.
그림을 보면 각각 복숭아꽃 가지와 갈대를 화면 위쪽에 비스듬히 배치하였고, 게와 쏘가리들은 모두 이를 향해 반원을 그리며 위로 상승하고 있어서 두 그림을 붙여 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둥 근 원형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쏘가리를 제외하고 네 마리의 게와 수초, 갈대가 모두 먹의 농담 변화가 적은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려졌다. 게의 형태는 비슷한 모양으로 반복되지만 중간에 흰색으로 그려진 게를 배치하여 획일적인 표현을 줄였다. 담박하고 문기가 느껴지는 어해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