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운(1761-?)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본관은 함평이고, 자는 명고(明考)이며, 기야(箕野), 심재(心齋), 취향(醉鄕), 심옹(心翁) 등 많은 호를 사용하였다. 그가 문인화가인가 중인화가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궁중에서 화원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 심사정과 먼 인척관계에 있었고, 거문고를 잘 탔으며 산수화, 진경산수화, 고사인물화, 화조화를 잘 그렸다. 그의 화풍은 심사정과 강세황의 영향을 토대로 한국화 된 남종화법이 많이 나타나며, 진경을 그릴 때에는 정선과 심사정, 강세황 화풍의 영향이 고루 반영되어 화풍상 절충파로 규정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그의 작품으로는 드문 화조화로서 그의 기량과 화풍이 잘 나타나 있다. 백로와 연화는 모두 장수와 다복을 상징하는 화제이며 그 모습이 아름다워 애호된 화조화의 주제이고, 쌍치도는 인공적으로 길들일 수 없는 야성을 가진 새여서 문인들의 깊은 심지와 절개를 상징하는 주제로 애호되었다. 이 두 주제는 모두 조선 후기에 유행한 것으로 심사정과 김홍도 등 여러 화가들의 작품이 전해지는데, 이 그림은 구도와 소재, 화풍에서 선배 작가들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쌍치도>가 구도나 소재, 화법에서 좀더 전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백로연화도>는 19세기 이후 등장된 감각적인 이색화풍의 요소를 예견하게 하는 새로운 미감을 담고 있다. 담묵을 위주로 한 세련된 먹색, 어눌한 듯 하면서 느슨하고도 부드러운 필묘, 주색(朱色)과 흰색, 군청을 풀어낸 화사한 담채 효과 등 이방운의 기량이 한껏 무르녹아 그의 기량을 새롭게 평가하도록 하며, 신명연(申命衍)의 화훼화에 비견 될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인 화풍으로 조선 후기 화조화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쌍치도>에는 자필 제시 옆에 ‘유련(遊蓮)’이라 관서 하였고, 그 아래에 ‘이씨(李氏)’라는 주문방인과 ‘기야(箕埜)’라는 백문방인이 있는데, 그 아래에 찍힌 4글자로 된 백문방인은 판독하기 어렵다. <연화백로도>에도 자필 제시 옆에 ‘연옹(蓮翁)’이란 백문타원인과 그 아래에 ‘이(李)’, ‘씨(氏)’라는 소형의 백문원인이 있다. 이 작품에 있는 ‘유련’과 ‘연옹’은 모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호이며, 특히 ‘연옹’이라 한 것을 보아 이 작품이 중년 이후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